Love Letter 사랑


y에게

길을 걷다 네 생각이 나서 문구점에 들러 편지지를 골랐다.
도서관 큰 창에 비가 채이고 모두들 제 일에 열심인데
나는 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네게 편지를 쓴다.

마음 같지 않게 비뚤어지는 못난 글씨에 마음이 조금 상하지만
그래도 지우개에 자꾸 손이 가는걸 보면
아직도 조심스러운 속내를 감출수가 없구나.

네게 보내는 한 자 한 자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쌓여가는 지우개가루 만큼이라도
이 글이 네게 다가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몇 자 적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런 너를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글을 쓴다는 거. 기다린다는 거. 마음 조릴 수 있다는 거.
비록 네 사랑의 그 마음보다 절실하지도
그 기다림의 시간이 간절하지 못할지라도
내 이 작은 종이 한 장이 네게 기쁨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좋겠어.

바보처럼 어제도 그렇게 너를 만났다.
무언가에 놀라 고개 돌리는 모습도, 감기에 걸려 콜록이는 모습도

약간은 야윈듯한 너를 먼발치에서 훔치듯 바라보다
곁을 스치며 어깨 한번 도닥거려줄 수밖에 없었던 나를
너는 얼마나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언제나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어.
그러지 못해 자꾸만 숨어드는 나를 너는 얼마나 안아줄 수 있을까.

지난 어느 긴 밤을 너와 내가 지새우며 나눈 이야기는
지난 생의 인연은 아니었을까.
마치 너를 다 받아줄 마냥 나는 그랬지만
네 말 사이사이의 여백은 알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너무나 많은 것을 그동안 잊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큰 것만을 생각하며
내 일상의 소중함을 무심코 지나쳐버리지는 않았는지.
그 눈빛들과 설레임을 흩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시간에 쫓겨 다 잊은 듯. 그러리라 믿어버린 건 아닌지.
그렇게 나의 처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네 목소리는
차분하게 내 마음에 닿았다.

어느 돌계단에 기대 차마 마주보지 못해 처마만 바라보면서
네게 내 생애 첫 고백과 함께 보낸 그 마음을 너는 아는지.
후배들에게 언제나 내 한쪽 어깨는 남겨져 있을 거라 말하면서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에는
사랑에 이르지 못하고 버려지는 호감이 많은가보다.

내가 꿈꾸던 그 마음만큼이나,
네게도 네 사랑이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는 걸 받아들이면서
너를 그냥 한 사람으로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던 내 모습에
속으로 눈물 흘려야 했다.

그 밤처럼 달빛이 환한 날에는 네 생각이 날거야.
이제 기약을 멀리하고
넌 다시 내게 먼 기다림으로 추억으로 남겠지.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러면서 우리가 서로의 일상에서
한 부분으로나마 남아있다는 걸 발견하는 건 기쁨일거야.

시간이 지나 우리가 나이를 먹고
지금 이렇게 적어 보낸 편지가
유치해서 웃음을 터뜨릴 그 날이 오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더 따뜻해질 거라 믿는다.

삶 속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웃음 짓고 눈물지을까
우리가 인연을 이야기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그 진실됨을 아름답게 여기는 그처럼
지금 홀로 창밖을 내다보는 그 순간 내 감정만큼이나
그 만큼의 사랑으로 내 속을 채우고 싶다.

다시 날이 밝으면 나는 새벽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난 언제나 내 가슴과 우리의 속내에
따스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언제나 고맙고 소중한 네게 이 마음을 담아 보낸다.
안녕.

2001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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